2018.08.05 (일)

  • 구름많음속초 30.0℃
  • 흐림철원 29.8℃
  • 흐림동두천 30.3℃
  • 흐림파주 31.8℃
  • 구름많음대관령 26.9℃
  • -춘천 33.7℃
  • 구름많음북강릉 30.1℃
  • 구름많음강릉 31.9℃
  • 구름많음동해 31.7℃
  • 구름많음서울 31.8℃
  • 구름조금원주 32.9℃
  • 구름조금수원 31.4℃
  • 구름조금영월 31.6℃
  • 구름조금대전 33.6℃
  • 구름조금대구 35.1℃
  • 맑음울산 35.6℃
  • 맑음광주 33.3℃
  • 맑음부산 31.8℃
  • 맑음고창 30.4℃
  • 맑음제주 30.9℃
  • 구름많음강화 29.3℃
  • 구름조금양평 33.1℃
  • 구름조금이천 32.0℃
  • 구름조금인제 32.5℃
  • 구름조금홍천 33.2℃
  • 구름많음태백 29.8℃
  • 구름조금정선군 32.7℃
  • 구름조금보은 32.5℃
  • 구름많음금산 32.8℃
  • 구름조금강진군 32.7℃
  • 구름조금경주시 35.4℃
  • 맑음거제 32.4℃
기상청 제공

인터뷰/인물

숨은 거장, 김채희를 만나다!

K-뷰티의 한류 열풍,
- 숨은 거장, 김채희를 만나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했다. 따뜻한 햇빛 한 조각이라도 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 때, 김채희 대표가 나타났다.
봄의 따뜻한 햇살을 어깨에 듬뿍 걸치고 여신처럼 환한 미소를 띄운 채 그녀는 아름답게 등장했다.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연금술사와 같은 시인이 있다면 그녀의 등장을 보고 눈부신 아름다움이라는 말보다 더 강렬한 표현을 썼으리라.
뷰티디자인학계의 숨은 거장인 김채희대표는 화려한 경력에 버금가는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매우 스마트하고, 천연의 순수한 열정과 뜨거운 의지로 가득 찬 진취적인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녀에게서 삶의 진중함과 내공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 이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화가인 언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저도 미대에 진학하려고 준비 했었는데, 형편상 진학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미국을 가기 위해 미용학원에 다녔어요. 그게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네요.”

고등학교 내신 1등급의 김채희 대표는 대학 대신 택했던 미국행이 무산되자, 우연히 뛰어든 미용계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꿨다. 어떤 상황에도 좌절보다는 꿈을 크게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그녀는 미용학원 강사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때부터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더 크게 가르치는 국제적인 스승이 되리라. 그녀의 가르치는 능력은 푸른 싹을 틔우며 큰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용어도 낯설던 시절, 바디페인팅에 관한 책을 보며 그녀는 몹시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바디페인팅과의 극적인 만남은 시작됐다.

 

- 바디 페인팅은 어떻게 배우게 되었나요?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선생님께 배웠는데 그 해 한국시데스코 바디페인팅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 다음 해에 국제시데스코 바디페인팅 대회에 최초로 한국대표 선수로 출전하게 되었어요 역시 대상을 탔어요.”

스무 살에 시작한 바디 페인팅은 그녀에게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열어줬을 뿐만 아니라 장차 대한민국 뷰티디자인계의 전문가로서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 대학에 늦게 입학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원 강의를 할수록 공부를 하고픈 열망이 커졌어요. 그래서 4년제 대학에 뷰티 관련 학과가 처음 생겼을때 얼른 입학을 했고,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유럽과 미국 등 외국에 2년에 한 번 정도는 꼭 나가서 공부를 하고 오죠.”

김채희 대표는 배움의 열망이 가득한 사람이다. 지난 15년간 국내외 대학교수로서 뷰티디자인학계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가르치는 것만큼 배움에도 열정적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 K-뷰티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뷰티는 트렌드 싸움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트렌드는 아시아에서 최고예요. 한국인은 굉장히 섬세해요. 중국과 미국, 호주에서도 가르쳐 봤지만, 결코 따라가지 못하더라고요. 기계보다 더 정확하고, 응용력도 좋으니 한국인들을 최고로 칠 수밖에 없죠.”

아시아는 지금 한류에 푹 빠져 있다. K-pop과 드라마를 넘어 화장품, 뷰티 산업 전반에까지 온통 한국 연예인을 따라 하려는 열광적인 팬들로 넘쳐난다.
중국을 비롯한 베트남, 몽골은 한국의 트렌드를 배우기 위해 모여든다.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그리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는 한국인의 기술을 배우려고 2년치 월급을 몽땅 투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반영구와 같은 뷰티 시술이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써먹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시아에 이어 서양에서도 배우려고 몰려오는 추세인데, 정작 우리의 뷰티 디자이너들은 해외로 나가려는 게 아이러니가 아닐까.

 

- 우리나라에서 반영구뷰티시술은 의사만 할 수 있나요?
“교수로서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죠. 외국에서는 타투자체가 합법이니,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양성은 해도 되고, 시술은 안 된다는 게 어불성설 아닌가요?”

가끔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반영구와 같은 뷰티 시술의 강사로 활동하는 한국인들이 뉴스에 등장하곤 한다. 한국에서 활동할 수 없어 빠져 나간 수많은 고급인력들이 외국에서 한국의 트렌드를 알리며 국위선양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김채희 대표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그들의 무한한 능력을 우리나라에서 펼칠 수 있도록 가르쳤던 그녀이기에 우리의 암담한 현실에 애가 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더 큰 내일을 위해 더 큰 꿈을 꾸고 화려하게 도약하고 있다. 뷰티만 전문으로 하는 빌딩을 갖고 싶은 소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빌딩에 들어서는 순간, 배우고 싶은 사람은 교육부터 현장 경험 등 전 과정을 마스터 하고 뷰티전문가가되어 나올 수 있게 되어 있고, 고객으로 들어가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름답게 변신하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가진 빌딩을 갖는 게 꿈이에요.” 그 안에서 저는 작품활동과 교육을 함께 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어요. 이 꿈은 20살이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것 중에 하나에요.

고대 미의 여신이라 불렸던 클레오파트라도 김채희 대표만큼 뷰티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꼭 맞는 화장품을 개발하기 위해 화장품 공장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가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클레오파트라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들의 소망이 화장품 산업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지금은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외모를 가꾸는 추세이기에 뷰티 산업은 더욱 상승 곡선을 그리며 질주할 것이다.
어떤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전문 인력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K-뷰티의 한류 열풍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김채희 대표와 같은 전문가가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창공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래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 
스무 살, 바디 페인팅으로 시작해서 토탈뷰티의 전문가로, K-뷰티 한류 열풍의 주역인 김채희 대표의 큰 꿈들이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지금, 그녀의 힘찬 날갯짓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인터뷰_류숙현 글정리_이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