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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물

'한국경제TV 아나운서' 유정인, 7전 8기 꿈을 향한 도전의 이야기

-어린 시절 발레리나가 되고 싶지만, 부상으로 인해 좌절
-동료의 공연을 보던 중, 새로운 아나운서의 꿈을 갖게 돼



저는 한국경제TV 아나운서와 정인발레핏을 운영하고 있는 유정인 입니다.

저는 10살 때부터 발레를 했어요.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신문을 보던 중 발레리나 사진을 보고 발레리나의 꿈에 빠졌고 한 달을 엄마를 졸라서 발레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발레는 저에게 정말 신세계였고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전공을 하게 되었고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발레와 동고동락했습니다. 언제나 꿈이 뭔가요? 라고 물으면 "발레리나요~!!"가 자연스럽게 나왔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발레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발레만 생각한거 같아요. 친구들은 시험 끝나면 나면 노래방도 가고 영화관도 가는데 저는 발레학원에 갔어요. 주말에도 발레학원에서 살았죠. 힘들기도 했는데 정말 행복했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요.


발레를 전공하며 그렇게 순탄하게 발레를 계속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있었던 발목 통증이 대학에 들어가서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졌어요.




결국 발레 공연에 출연도 못하고 관객으로 앉아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공연을 소개해주던 사회자가 눈에 들어왔죠. 공연에 출연할 수는 없지만 멋지게 발레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 길로 대학 방송국 아나운서에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발레가 아닌 아나운서 일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나운서는 말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준비하다 보니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아나운서 지원을 100곳도 넘게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포기하지 않고 자기소개서도 다듬고 프로필 사진도 다듬고 필기시험도 준비하면서 하나하나 다듬어 나가다가 정말 거짓말처럼 문이 열리더라고요.

 



처음 아나운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곳이 한국경제TV였어요. 생소한 경제 방송 아나운서 일을 하던 중 한 번은 경제 관련 퀴즈를 코너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방송 좀 재밌게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퀴즈의 보기를 낼 때 춤도 추고 노래도 살짝 했어요. 시청자분들이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이후에도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믿어주셔서 기억에 남는 캐스터가 될 수 있었죠. MC로서 프로그램도 진행해보고 프리랜서 아나운서로도 활동하게 되었어요.




-미스코리아 도전기


어릴 때 아빠와 해마다 열리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지켜보면서 그때마다 아빠는 늘 "우리 딸도 나중에 저기 나가면 되겠다.." 하셨죠.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한번 나가볼까? 안 돼도 도전이 중요하지.. 라고 생각했어요.


2014년에 처음 출전하게 되었는데 긴장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결과는 서울 예선대회 탈락이었답니다. 아빠와 가족 모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 당시에는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가 오기가 생겨서 2015년에 다시 도전하게 됐는데 아빠의 반대가 심해 엄마에게만 알리고 몰래 출전했어요. 여기에서 참가자 중 TOP3에 당선되어 서울 대표로 본선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집에 들어갔더니 아빠가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정말 기뻤답니다.


서울대회 당선 이후 본선대회 합숙을 6주간 진행했는데. 그 해 대회는 전체 후보 중에서 1차 합격자만 선발해서 본선 대회에 나가는 방식이었어요. 2주 후 1차 심사를 보는데 심사위원들이 저에게 질문을 하나도 안 하시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신 분은 하라는 말에 안 되겠다 하고 번쩍 손을 들고나갔어요. 그때는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었던 이유, 두 번째 도전이라는 것까지 정말 솔직하게 말했어요. "사실 저는 미스코리아 재수생이에요" 라고 솔직하게 얘기했더니 방송국에서 관심을 가져 주시더라고요. 아마 이런 솔직한 모습 때문에 MBC '사람이 좋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것 같아요.


대회 합숙 기간 중엔 '엄지공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어요 춤, 워킹 연습 등을 하다 보면 앉아서 쉴 때가 많았는데 앉아 있을 때 작고 귀엽다고 미스코리아 동기들이 불러준 애칭입니다. 제가 늦게 미스코리아에 도전하게 되면서 동기들 중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요. 같이 출전한 동생들이 많이 따라주고 잘 지냈던 것 같아요.

 



-다시 발레의 꿈에 도전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은 접었지만 발레에 대한 생각은 늘 있었어요.

언젠가 방송에서 저의 모습을 보니 몸의 대칭이 안 맞아 보이는 거예요. 대칭을 맞추기 위해서 재활센터도 가보고 했는데 결국 해결한 방법은 발레였어요. 발레는 항상 오른쪽 왼쪽을 똑같이 사용하면서 몸의 균형을 잡는 무용이거든요.


그렇게 제 몸을 제 전공인 발레로 교정하면서 정보를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저와 같이 방송에 꿈을 두고 있는 친구들이 몸의 대칭을 만들어주는 부분에 고민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카메라 앞에서 멘트를 생각하고 정리해서 말하기도 힘든데 몸의 균형을 일부러 신경 쓰면서 말하기는 더 어렵거든요. 몸은 자연스럽게 두고 진행에만 집중해야 되는데 말이죠. 몸의 균형 때문에 고생하시는 일반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이런 방법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자 제 전공인 발레와 관련된 발레핏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발레핏은 발레와 피트니스의 합성어에요. 말 그대로 몸의 핏을 잡아주는 운동이죠. 발레의 동작들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턴 아웃 180도 벌리기 등 어려운 발레 동작보다는 몸의 균형을 맞추는데 집중합니다.


학교에서 발레를 배울 때 목과 허리 통증에 많이 시달렸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목과 허리를 푸는 스트레칭 동작들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제가 통증을 풀어줄 때 했던 발레 동작들이 제 수업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웨이트트레이닝은 겉 근육을 발달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발레는 겉에 드러나지 않는 속근육을 사용해요. 복근도 초콜릿처럼 쪼개지는 것이 아니라 11일 자로 허리라인 안에서 잡히게 되죠. 발레의 동작으로 몸의 근육을 가늘고 길게 만들어주는 것이 발레핏이에요. 몸이 가늘고 길어지는 건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겠죠.




-끝으로..


저는 참 꿈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발레리나, 아나운서, 미스코리아, 언제나 목표가 있었어요. 모든 게 쉽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꿈들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었던 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발레핏과 아나운서로서 여러분들에게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김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