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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물

춘천속의 이디오피아, 황실의 카페'이디오피아벳' - 2

- 세계커피축제 개최 등 이디오피아와 한국의 연결고리 역할
- 가족기업 활성화가 중요..커피 문화의 변화 추구



Q . 1968년 춘천 제막식 때 문화원을 지었으면 좋겠다. 라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서울 시장이 말했지만 사장님이 지을 수 없다. 고 말했다고 들었는데.


A . 제가 대통령님한테 직접 말했어요 지을 수가 없었어요. 여기서 38선이 15km정도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데다가 1968 1월달에 김 신조가 청와대 습격을 했고, 또 10월달에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일어나고 12월달에는 이 승복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지금 서울을 피바다로 만든다고 하는 것보다 그때는 서로 더 긴장상태였고 힘들었던 상황이었죠. 이디오피아 황제가 왔는데 도 박 대통령이 김포공항을 못 왔어요. 그래서 황제가 두 시간 동안 기다렸어요. 첫날부터 조금 삐걱거렸죠.


어쨌든 바로 와서 제막식을 하려고 했는데 지연이 되는 바람에 시간이 안 맞아서 그날 못 오신 거야. 근데 이디오피아의 특성상 자기네들이 애도 해야 한다. 고 하면 그걸 제일 우선으로 하는데 도착하자마자 환영식 이라고 회관에서 잔칫집처럼 한 거야. 그걸 보고 황제가 못마땅해서 고개 돌리고 있고.. 사실 자기는 초상집에 온 건데, 여기 와서 잔치를 하니까 기분이 안 좋았겠지




제막식을 하고 난 다음에 황제가 대통령한테 부탁한 것은 이 탑은 개인들이 한 거니까 국가에서 기념관을 하나 세워줘라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쉽게 승낙을 못 한 거지

이게 이디오피아 정부에서는 계속 언제 지을 거냐고 독촉을 하고, 한국정부에서는 이걸 지었다가는 당시 상당히 날이 서있는 시국에, 적국의 어떤 기념관을 또 세운다는 게 그 사람들을 매우 자극하는 상황 인 거야. 그래서 주춤 주춤 하다 보니까 다시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이 또 터져 버린 거지

그러니까 더 못 짓게 되고 8 15일쯤 됐을 때 정부에서 우리가 너무 힘들다라고 하니까 장인어른이 그럼 알았다. 우리가 짓는다. 그래서 8 15일날 광복절 행사 끝나고 여기 오셔서 행사를 하신 거에요. 그렇게 해서 창녕에 있는 집하고 안동 쪽을 다 정리하고 오셔서 이 일을 이제 하겠다고 결정을 하신 거지


근데 그날 듣고 바로 할 수가 없잖아. 재원도 필요 하고, 그때 제일 힘든 건 콘크리트 문제였어요. 시멘트가 없는 거야. 금멘트지. 근데 또 여기가 물가니까 지을 수가 없는 거야. 그런데도 왜 여기다 지었냐고 하면, 황제가 오셔서 탑이 이쪽에 있으니까 여기에 텐트를 친 거야. 어찌됐든 이부자리라고 텐트를 치고 의자를 내리면 거기가 성지가 되거든요.




의자를 내렸는데 그 의자가 (가리키며) 저 자리에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여기다 짓는다고 했지만 지을 때 춘천에 건축사가 하나도 없었어요, 건축설계사가. 그래서 춘천 댐 관리과장으로 오신분 한 테 제가 이걸 설계를 해야 하는데 서울대 학생 중에서 누구한테 설계를 좀 부탁하면 안되냐라고 물었더니 이 분이 자기가 교량처럼 설계를 해가지고 만들었어요.

그리고 시멘트를 그냥 시멘트를 쓴 게 아니라 댐에 들어가는 그 시멘트가 있어야지 이게 괜찮아진다고 했는데 그 시멘트 값이 비쌌던 거지 결국 그 예비 시멘트를 사가지고 이걸 짓게 된 거에요.


짓고 나서 시간은 자꾸 지나고, 뭐랄까 개관일자를 정해야 하는데, 무슨 의미 있는 날을 정해 야 할거 아니에요. 그래서 황제 생일을 보니까 1125일이었거든, ‘아 그 날짜에 맞춰서 개관을 하자.’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결정을 했더니 황제께서 그런 큰 축하공연을 할 때 필요한 게 커피다.’ 그래서 그때 생두가 우리나라로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거에요.


생두를 볶아서 써라‘ 고 말하신 걸 듣고 생두를 장모님이 제일먼저 일본대사관에 파견 되어있던 이디오피아 사람들한테 볶는 법을 배워서 개관기념으로 커피를 볶게 됐죠. 그리고 생두를 받았을 때 답으로 말했던 게, ‘단 하루도 커피 향이 안 나는 날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였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오늘까지 11174일 됐죠. 하루도 저희가 문 닫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죠. 1974년도에 이디오피아가 공산화가 되고, 공산화가 되면서 이제 간판도 다 내려야 할 처지가 되고, 또 이 안에 있는 모든 이디오피아와 관련된 집기들은 중앙정부에서 와서 압수하고, 그리고 장모님이 1974 9월달쯤에 서빙고에 불려가서, ‘간판을 다 떼라, 내려라.’ 이렇게 말했을 때 장모님이 이제 단판을 지은 거지. ‘간판을 하나 내리는 게 큰 의미냐.’ ‘이 간판을 내릴 거면, 옆에 있는 탑도 치워버려라. 우표도 수거해서 다 버려라. 그리고 옆에 참전 기념으로 한 모든 것을 삭제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간판을 내리는 게 의미가 있지. 무슨 간판 하나 내리는 게 의미가 있냐. 만약에 이디오피아에서 민주화가 다시 된다고 하면 그때는 창피해서 어떻게 하냐. 만약에 이디오피아가 내가 죽을 때까지 민주화가 안되어있으면 죽을 때 이 간판 내가 내리고 간다.’ 그렇게 말씀 하시고 각서를 쓰시고 오셔서 지금까지 하고 계시는 거죠




그게 이제 제일 큰 감동이죠. 서빙고 라는 곳이 김종필씨가 있을 때는 들어가서 깨지고 나오신 곳인데. 그런 어려운 곳 인데도 참 대단하셔요2015년도 418일날 대통령이 오셨을 때 그날 말씀을 하시더라고, 대통령하고 하신 말씀이 이 집을 내가 서빙고에 가서 담판을 해서 지켰습니다.’ 라는 말씀을 그날 하시더라고.




1992년도에 이제 이디오피아가 민주화가 되고 회복이 되고, 예전에 황제의 수행원으로 오셨던 분이 다시 공산화에서 민주화로 가고 수상이 되어서 22년을 일 하시다 3년전에 돌아가셨어요. 이제 그 분이 1998년에 우리 집을 한번 더 방문을 하셔서 대한민국이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2013 6 19일날 수교 50주년 기념사를 여기서 했어요. 그때 직항노선을 개척을 했지. 이디오피아하고 한국하고 이디오피아항공으로 직항노선을 개척을 하고, 그 뒤에 직항노선 비행기를 타고 가서 정부관료들 장관을 비롯해 230명 모셔가지고 이 앞에서 개인적으로 기념을 했어요.




이제 그런 일을 쭉 진행해오다 2011년에 대사관이 생겨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대사관이 생기고 처음 신임장을 받기 전에 대사관님이 여기 오셔서 참배를 많이 하셨는데 그 분이 또 공교롭게도 1998년도 수상이 오실 때 수행원으로 따라오셨던 분이었어요. 상당히 많은 외교관계를 성립을 시키신 분이죠. 그래서 이디오피아 대사관 같은 역할을 우리가 하고 있는 거에요. 문화원이라고 얘기를 했어도 어떤 일이 생기거나 외교적 정책 같은 문제가 생기면 저하고 상의를 많이 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유지 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건 2년전에 오로미아 주지사로 있었던 분이 오셔서 우리나라 전체 탐방을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다시 수상이 되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 집은 황제, 전대통령, 지난 수상, 이번 수상 들이 많이 다녀가신 곳 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 집을 운영하고 있죠. 커머셜로 못 나아가는 이유도, 안 나아가려고 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가 많아요.